미국 워싱턴에서 올해 첫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가 개최되어 경제위기극복 상황을 점검하고, 위기 이후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는 우리나라가 g20 의장국으로 처음 주재하게 되는 장관회의로 g20 서울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첫 공식행사라 할 수 있다. 이번 회의는 올해 4차례 열리는 장관회의 중 첫 번째로 6월 캐나다 정상회의와 11월 서울 정상회의의 향방을 점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은행세 도입 등 민감한 현안들이 다뤄질 예정이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g20 의장국을 맡은 한국의 경우 은행세 도입에 대한 각 국가 간의 원만한 조율이 첫 번째 과제로 대두된 셈이다.
은행세 도입의 배경
은행세는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은행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이다. ‘자기책임원칙’을 확고히 함으로써 납세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독일이 가장 먼저 은행세 도입을 확정했으며, 미국과 프랑스 및 영국도 도입을 추진하는 등 각국으로 번져가는 추세다.
은행세의 도입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국민들의 세금으로 부담한 구제금융을 회수하고 은행의 과도한 리스크 추구 행위를 규제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은행들이 직접 돈을 내서 그동안 들어간 공적자금을 갚고,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금융위기에 대비하여 자금을 모아놓자는 것으로 은행의 부채에 세금을 매기게 되면 은행들의 무분별한 차입을 제어하는 부수효과도 발생한다.
지난 1월 오바마 미 대통령이 ‘금융위기 책임수수료(financial crisis responsibility fee)’ 도입 계획을 밝힌 이후 영국, 독일, eu(유럽연합) 등이 잇달아 찬성 의사를 밝혔으며, 지난 2월 24일 이를 위한 국제공조 등 8가지 원칙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은행세를 도입함으로써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의 건전성을 높이고 국가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향후 금융회사의 부실에 대비한 준비자금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도 담겨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이상 국민의 세금으로 은행의 부실을 막아줄 수 없다는 정서가 팽배한 가운데 금융사들의 보너스 잔치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은행세 도입의 직접적인 이유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 과정에서 금융기관에 지원된 총액은 약 6,983억 달러로 이 가운데 상환된 금액은 31%인 2,158억 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그동안 4,512억 달러를 금융기관에 지원하였음에도 현재까지 상환된 금액은 41%인 1,872억 달러 정도이며, 여전히 2,640억 달러가 미상환된 상태로 남아 있다. 영국의 경우 940억 달러, 독일 650억 달러가 미상환된 상태로 미상환 자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 세 국가가 은행세 도입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은행세의 주요 내용
g20 국가들은 지난해 9월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금융권이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투입된 비용 일부를 부담하고, 향후 금융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도록 imf에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따라 imf는 은행세 도입 등 금융위기 손실 분담 방안에 대한 중간 보고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은행세 도입 자체에 대해 각 국가별로 입장과 의견이 크게 달라 imf 초안의 내용은 많은 수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그동안 논의된 다양한 은행세 부과 방안 중 은행의 비예금성 부채에 물리는 ‘금융안정분담금(fsc: financial stability contribution)’, 단기성 외환 거래에 세금을 물리는 ‘금융거래세’, 과도한 보너스나 일정 수준을 넘는 순이익에 물리는 ‘초과이득세(fat: financial activity tax)’ 등 3가지 방안을 소개하였다. 이중에서 imf가 g20에 권고하는 방안은 ‘금융안정분담금’과 ‘초과이득세’로 정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 일부 국가들이 적극 주장하는 '토빈세'는 국제금융시장 위축 및 추가비용에 대한 고객부담 가능성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현재 은행세 도입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자산규모 500억 달러 이상의 대형금융기관에 한하여 10년의 장기에 걸쳐 부채부문에 대해 연 0.15%의 세율로 총 900억 달러에서 1,170억 달러 규모의 은행세를 부과할 예정으로 있다.
이미 작년 10월부터 은행세를 시행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도 주로 부채에 해당되는 부문에 대해 과세를 하고 있으며, 이를 재원으로 안정기금(stability fund)를 설립할 계획으로 있다. 이 기금은 향후 15년 내 gdp의 2.5%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운용하여 금융위기시 투입자본으로 활용하고 잠재적으로 국가부채 축소의 재원으로 사용할 예정으로 있다.
은행세 도입에 대한 국가별 입장
지난 4월 초 파이낸셜 타임스에 의하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은행세 도입의 필요성에 대체로 의견일치를 봤으며 미국도 여기에 동참하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보도한바 있다. 특히 브라운 영국총리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은행들에 대한 자본규칙 강화와 함께, 은행세 도입이 최종 합의되길 바란다”며 공통 기반에 근거한 다국적 기준의 세금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 스웨덴 등 몇몇 국가에서는 이미 은행세를 시행하고 있거나 구체적인 도입방안이 마련된 상태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향후 금융위기 발생 시 정부뿐 아니라 금융기관도 재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은행세의 기본 아이디어만 알려진 상태에 불과하다. 금융위기 발생 전에 은행세를 부과할지 사후에 할지,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만으로 징수대상을 한정할지 등 국가별 이해관계가 상이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특히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이해관계가 은행세 도입의 주요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자국의 은행시스템 보호와 미래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은행세 도입에 관심이 큰 반면, 신흥국은 자국에 유입되는 단기 투기자금을 방어하는 부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은행세 도입에 대한 이견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한국과 함께 g20 공동의장국인 캐나다의 경우는 은행세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오히려 6월 g20 정상회의에서도 은행세 도입 문제를 주요 아젠다로 채택할 계획이 없음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캐나다는 금번 금융위기에 따른 피해가 크지 않은 국가로 은행에 대한 제약조치가 필요하지 않음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
또한 은행세 시행 방안에 있어서도 각국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예금을 제외한 은행자산의 위험도 등에 따라 연간 12억 유로(1조8,300억원)의 은행세를 거둬 보증펀드 형태의 ‘안정기금’으로 적립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독일보다 한발 더 나가 헤지펀드에도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은 은행들의 단기 도매영업자금(wholesale funding)에 세금을 매기는 방법을 강구 중이다. 영국은 아직 세금부과 대상이나 규모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독일의 경우를 참조해 연간 수십억 파운드의 세금부과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세를 도입할 경우 과세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이견이 제시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식 은행세 도입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반면, 영국은 '과세 주권'을 내세우며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eu집행위원회 차원에서도 과세 여부는 각국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분위기여서 g20 회의를 통한 통일된 공조체계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은행세 도입의 장·단점
사실 은행세가 도입될 경우 그것은 우리 경제의 최대 취약점으로 지목되는 외자 유출입의 진폭을 줄이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은 편이다. 미국식의 은행세를 도입하게 될 경우 외화차입이 늘면 부채가 커져 은행세가 높아지므로 과도한 단기차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자금조달을 외화차입에 의존하는 외국은행 지점들에게 은행세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금융권 총외채의 40%를 차지하는 단기차익거래에 대한 효과적인 제어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98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된 외화 유출입에 대한 효과적인 제어수단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임의적인 제어가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은행세의 도입은 대내외적으로 금융기관에 규제를 가한다는 비판 없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줄일 수 있게 해준다.
그동안 은행의 공적기능을 이유로 금융위기 때마다 세금으로 자금을 지원하였음에도 여전히 공적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어왔는데, 은행세의 부과는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사전적인 방어책이 되면서 그동안 투입한 공적자금의 회수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도 있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 등 국내관련 기관은 미국식 은행세 도입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형금융기관에 대해 과세하는 미국식 은행세, 금융안정분담금제도 시행은 은행간 인수·합병(m&a)을 통한 메가뱅크를 염두에 두고 있는 우리 정부의 구상과 상충한다는 문제가 있다. 당장 kb금융지주나 하나금융지주와 통합을 추진 중인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선진국의 대형금융사들을 겨냥한 규제조치가 오히려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금융기관의 성장을 막을 위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환유동성 규제조치 효과만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실질적인 과세방안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 역시 은행세 과세 대상을 자산 500억 달러이상의 대형 금융사로 한정시킨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은행세 부과분을 금융기관이 금융소비자에게 전가할 경우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오게 될 위험도 상존한다. 오히려 서민금융 확대에 사용될 자금이 축소되어 자금지원이 보다 경직될 가능성도 있다.
이상과 같이 여전히 국가별로 상이한 이견을 보이는 은행세 도입의 문제는 이번 g20재무장관회의에서 주요 논의 대상으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g20의장국으로서 은행세 도입 등 여러 현안과제에 대한 각 국가 간의 이견을 원만하게 조율하면서,‘코리아 이니셔티브’도출을 위한 효과적인 회의 주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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