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대 국감서 시뮬레이션 및 자체조사 거쳐 국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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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고등법원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가운데, 금융당국은 두 회사의 합병에 문제가 없다고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작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된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시뮬레이션 및 자체 조사를 거쳐 결과를 19대 국회에 보고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두 회사 합병 간 주가산정기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병석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가를 계산하는 기간은 1년까지 확대해 시세조정이 불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옛 삼성물산 주식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결정됐는데, 주가산정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추는 개입이 가능하고 이것이 삼성 오너 일가에 유리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합병 비율을 정할 때 두 기업의 1개월간의 주가를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금감원은 15개 종목을 임의로 선정해 주가산정기간은 3개월, 6개월 등으로 늘리면서 합병 비율을 산정하는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주가산정기간이 길든 짧든 어느 한쪽이 항상 유리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특정한 방향성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가산정기간이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서울고법이 “당시 삼성물산 주가는 낮게, 제일모직 주가가 높게 형성돼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가 합병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특수한 사정이 고려돼야 한다”며 “삼성물산의 부진이 주가를 하락하게 하는 원인이 됐지만, 이것이 삼성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 있다는 의심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밝힌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합병 당시 삼성생명이 자산운용사들과 일일이 접촉해서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박을 가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었다.
이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은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합병 전에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의 주식을 꾸준히 팔아 주가를 낮춘 효과가 발생했음을 언급하며 “이같은 매도가 정당한 투자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관련해서도 당시 많은 의혹이 제기됐었는데, 안철수 의원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계약 체결 이전 국민연금은 18거래일 중 15거래일간 꾸준히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해 주가 하락에 일조했다”며 “그 결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1대0.35라는 낮은 비율로 합병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삼성가는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율 34.98%를 확보할 수 있었고, 삼성그룹은 7,900억원의 이익을 봤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적정 합병비율이라고 추산한 1대0.46으로 합병했다면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삼성가의 지분율은 3.02%p 떨어진 31.36%에 그쳤을 것”이라며 “낮은 합병비율로 인해 삼성그룹은 7,900억원의 혜택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런가하면 연금관련 시민단체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서울고법의 판결에 대해 2일 논평을 내고 “법원의 결정대로 1대0.418의 합병비율을 적용해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가치를 계산할 경우 766억원이 증가한다”며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연금재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합병에 찬성해 소중한 연금재산에 손실을 발생시켰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서울고법 민사 35부(윤종구 부장판사)는 옛 삼성물산 지분 2.11%를 보유한 일성신약과 소액주주들이 “삼성물산 측이 합병 시 제시한 주식매매가가 너무 낮다”며 제기한 가격변경 신청 사건에 대해 1심을 깨고 매수가를 올리라고 판결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해 7월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결의했는데, 이들은 합병에 반대하며 보유주식을 삼성측이 매입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삼성은 주당 매매가를 5만7,234원으로 제시했다.
일성신약과 소액주주들은 제시된 가격이 너무 낮다며 법원에 가격조정 신청을 했지만, 1심 법원에서는 “제시된 가격이 적정하다”면서 신청을 기각했다.
하지만 2심은 1심을 깨고 “합병 결의 무렵 삼성물산의 시장주가가 회사의 객관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보통주 매수가를 합병설 자체가 나오기 전인 2014년 12월 18일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산출한 6만6,602원으로 결정했다.
서울고법의 결정에 대해 삼성물산은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며 재항고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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