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후반전, 글로벌 Top 10 리스트 밖에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소위 ‘기타(Others)’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잠재력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 해부터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샤오미 역시 얼마 전만 해도 기타 기업 중 하나에 불과했다. 각 국가에서 시장 점유율 10% 이상을 차지하며 성장 기반을 다지고 있는 로컬 강자들(Local Kings)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대부분의 로컬 강자들은 본체를 숨기고 있다. 로컬 기업이기 때문에 저절로 숨겨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의도적으로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를 택한 것이다. 이들이 몸을 숨기는 방식은 다양하다.
(1) 첫 번째 유형은 여러 로컬 브랜드 뒤에 숨는 경우이다. 프랑스의 위코, 러시아의 플라이 등 현지에서 주목 받고 있는 브랜드 뒤에 숨어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나가는 티노 모바일(Tinno Mobile)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 글로벌 기업과의 파트너십 뒤에 숨어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폭스콘은 노키아, 블랙베리, 인포커스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외주 생산을 넘어 제품 개발, 유통, 판매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3) 기업 분할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사업 규모를 줄임으로써 경쟁을 회피하는 기업도 있다. 부부까오는 비보, 오포, 그리고 원플러스로 기업을 분할함으로써 수 년 동안 경쟁사의 주목을 피할 수 있었다.
(4) 인수 혹은 라이센싱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의 뒤에 숨는 로컬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TCL과 레노버는 각각 알카텔, 모토롤라를 인수해 중국 이미지를 벗고,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5) 글로벌 유통 기업 브라이트스타(BrightStar)처럼 유통 기반을 활용해 자체 로컬 브랜드를 육성하는 경우도 있다. 기술 장벽이 낮아지면서 유통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폭스콘이 글로벌 브랜드를 이용해 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면, 브라이트스타는 유통 역량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육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로컬 강자들이 ‘숨은 성장(Hidden Growth)’을 추구하는 첫 번째 이유는 선도 기업과의 경쟁을 버텨낼 수 있는 체력을 키울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진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활용하면 핵심 역량에 집중해 경쟁력을 빠르게 높일 수도 있다. 또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를 이용해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로컬 강자의 성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경쟁자의 등장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들의 숨은 성장 전략은 새로운 게임 룰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향후 휴대폰 시장의 변화를 파악하고, 잠재적 위험 요소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시장의 보다 낮은 곳, 보다 작은 움직임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향후 휴대폰 시장 변화의 진앙지는 오히려 시장의 머리가 아닌, 꼬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휴대폰 경쟁 구도 변화
스마트폰이 시장에 나온 이후, 지난 7년 동안 휴대폰 시장의 변화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과 애플이 노키아와 블랙베리를 추월했고, 화웨이, 레노보, ZTE,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이 3~5위로 부상하는 큰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글로벌 Top 5 혹은 Top 10 기업들의 순위 변동에만 주목해서는 휴대폰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읽을 수 없다. 스마트폰의 발전이 둔화되고, 시장의 성장엔진이 선진국의 중고가 시장에서 신흥국의 중저가 시장으로 옮겨가는 최근의 시장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스마트폰 후반전, 새로운 변화는 글로벌 Top 10 리스트 밖에서 시작되고 있다.
꼬리가 길어지는 휴대폰 시장
노키아와 블랙베리가 주도하던 스마트폰 시장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 성장하면서 노키아와 블랙베리의 점유율은 하락하기 시작했고, 2011년에는 삼성과 애플에게 1, 2위 자리를 내주게된다. 새로운 1, 2위 업체의 성장 탄력 덕분에 Top 2 점유율 합계는 2012년 50%까지 올랐지만, 이후 하락세가 이어져 2014년 3분기에는 37% 수준으로 떨어졌다. 삼성과 노키아가 1, 2위를 지키고 있는 전체 휴대폰 시장의 Top 2 점유율 33%와 유사한 수준이다.
하락하는 것은 Top 2 점유율뿐만 아니다. 3~5위 점유율도 떨어지는 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반면, 6위 이하의 점유율은 성장하는 추세이다. 특히, 10위권 밖의 ‘기타(Others)’ 업체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체 휴대폰 시장과 스마트폰 시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로 인해 최근 휴대폰 시장의 경쟁구조는 전에 비해 꼬리가 길어지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 전반전에는 상위 업체의 점유율이 낮아지면 새로운 1, 2위 업체가 등장해서 Top 2 점유율을 다시 끌어올렸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 후반전에 접어들면서 상위 업체의 점유율 하락은 새로운 1, 2위 업체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중소 업체가 그 자리를 채우는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휴대폰 시장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적인 측면의 진입 장벽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디어텍과 같은 칩셋 업체들이 앞다퉈 턴키(Turnkey)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텍과 같은 업체들은 프로세서를 판매하고, 관련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본적인 휴대폰 설계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객사가 원한다면 소프트웨어(OS, UI)를 탑재한 PCB 어셈블리 수준의 반제품까지 공급해주고 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불과 한 두 명의 엔지니어를 고용해 케이스를 덧씌우기만 하면 자신의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로컬 강자(Local Kings)의 등장
휴대폰 시장의 꼬리가 길어지면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리스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로컬 강자(Local Kings)들도 다수 등장하고 있다. GfK, SA를 비롯한 각종 자료 조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각 국가별 휴대폰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로컬 강자’ 14개 기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주로 아시아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고, 중남미, CIS, 아프리카 등 주로 신흥국 시장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선진국 시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프랑스에서도 위코(Wiko)와 같은 로컬 강자를 찾을 수 있었다.
기준을 2014년 누적 시장 점유율 5% 이상으로 낮추면 주목할만한 로컬 기업 10개를 추가로 찾을 수 있고, 기준을 더욱 낮춰서 3분기 시장 점유율 5% 전후인 기업(13개) 혹은 2014년 100만대 이상 판매가 예상되는 기업(11개)으로 확대하면 24개 로컬 기업을 추가할 수 있다. 로컬 강자 14개 기업과 주목할만한 로컬 기업 34개를 합친 48개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셈이다.
모바일 시장의 ‘숨은 성장 (Hidden Growth)’ 기업들
로컬 강자들(Local Kings)의 특징은 시장의 주목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알리는 데 열심인 데 반해, 이들 기업들은 기업의 본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수면 위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처럼, 많은 로컬 강자들의 본 모습은 수면 아래에 숨겨진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로컬 강자들의 전략은 ‘숨은 성장(Hidden Growth)’이라고 할 수 있다.
(1) 시장-기술 분업으로 숨은 기업
앞서 살펴본 것처럼, 로컬 강자들은 대부분 아시아, 중남미 등 신흥국 시장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의 위코(Wiko)는 특이한 사례라고 할만하다.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유럽의 핵심 시장인 프랑스에서 창업 3년만에 휴대폰 시장 점유율 10%를 넘어선 기업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휴대폰 시장에서 위코는 2013년 애플을 추월했고, 2014년에는 노키아를 제치고 삼성에 이은 2위를 굳힐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에 인접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플라이(Fly)’라는 기업이다. 플라이는 2003년 설립된 영국 기업으로 2012년 미디어텍 프로세서 기반의 스마트폰을 러시아에 출시하면서 성장을 본격화한 기업이다. 2014년 1~3분기 러시아 휴대폰 시장 점유율 12%로 3위이고,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11%의 시장 점유율로 2위에 올랐다.
이 두 기업의 공통점은 최근 3~4년 사이에 급격히 성장했다는 점, 글로벌기업이 중시하는 핵심 시장에서 로컬 강자로 자리매김했다는 점 등이다. 또한, 휴대폰을 개발, 생산하는 기술 역량 없이 성장했다는 점도 두 기업의 중요한 공통점이다.
‘어떻게 자체 기술 역량 없이 로컬 강자로 성장할 수 있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숨은 기업’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티노 모바일(Tinno Mobile)’이라는 중국 기업이다. 위코와 플라이 제품의 대다수는 티노 모바일이 개발, 생산한 제품들이다.
티노 모바일과 같은 회사를 ‘독립계 디자인 하우스(Independent Design House, IDH)’라고 하는데, 가치사슬상 프로세서 업체와 완성품 기업 사이에 위치해 완성품 기업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 생산해주는 외주 기업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미디어텍은 완성품 기업들이 쉽게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레퍼런스(Reference) 디자인과 관련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미디어텍의 레퍼런스 디자인을 이용해도 제품을 개발할 역량이 없는 기업, 혹은 추가적인 차별화가 필요한 기업들은 별도의 디자인 하우스를 통해 제품을 개발하게 된다.
티노 모바일의 파트너 브랜드는 위코와 플라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티노 모바일의 파트너는 13개, 그 중 시장 점유율 10% 이상의 로컬 강자의 수는 위코, 플라이, 인도의 마이크로맥스, 파키스탄의 Q-Mobile, 방글라데시의 Symphony 등 5개이고, 주목할만한 로컬 기업으로 꼽힌 기업도 4개이다. 티노의 주요 파트너 기업들이 모두 해당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티노 모바일의 숨은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4년 6월 구글은 Google I/O 컨퍼런스를 통해 100달러 수준의 저가 스마트폰 ‘안드로이드 원’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구글의 순정 안드로이드 OS와 미디어텍의 프로세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인도 시장에 출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주요 파트너로 언급된 기업들은 구글, 미디어텍, 그리고 인도의 마이크로맥스(Micromax), 카본(Karbonn), 스파이스(Spice) 등이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파트너는 언급되지 않았는데, 바로 티노 모바일이었다. 마이크로맥스, 카본, 스파이스가 출시한 안드로이드 원 스마트폰은 모두 거의 같은 사양을 가지고 있다. 각 제조사가 개발한 것이 아니라, 안드로이드 원의 디자인 하우스인 티노 모바일이 개발, 생산한 제품을 각 브랜드가 외관 디자인 정도를 차별화해서 출시했기 때문이다. 구글의 저가 스마트폰 시장 대응 전략의 핵심이 ‘안드로이드 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티노 모바일이 스마트폰 산업에서 갖는 숨은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최근 구글은 안드로이드 원 프로그램을 인도에서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등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주요 파트너로 방글라데시의 심포니(Symphony)가 언급되었는데, 이 기업은 방글라데시 휴대폰 시장의 36%, 스마트폰 시장의 53%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로컬 강자이다. 안드로이드 원 프로그램을 통해 티노 모바일과 로컬 강자의 결합이 한층 공고해지게 된 셈이다.
티노 모바일의 기업공개 추진 과정에서 알려진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티노 모바일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1,400만대에 달한다고 한다. 당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10위권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1,400만대도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파트너들의 성장이 2012년부터 본격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티노 모바일의 사업 규모는 상당한 수준까지 성장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티노 모바일의 주요 파트너들의 평균 성장률을 적용한다면, 2014년 티노 모바일의 판매 수량은 약 5,000만대, 스마트폰 시장 내 7위 수준으로 추정된다. 근소한 차이로 경쟁하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 3위 경쟁 기업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물론, 디자인 하우스가 당장 브랜드 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 하우스들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사업모델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쿨패드, 비보, 오포, 지오니와 같이 디자인 하우스로 시작해 자체 브랜드 사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기업들이 다수 존재하고, 디자인 하우스의 83%에 달하는 기업들이 향후 자체 브랜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은 디자인 하우스를 잠재적인 경쟁사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티노 모바일과 위코의 관계가 제품 외주 개발 파트너십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위코는 티노 모바일이 9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티노 모바일의 자회사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하우스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티노 모바일은 위코를 통해 이미 브랜드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게다가 티노 모바일의 목표는 프랑스 시장 로컬 강자에 그치지 않는다. 2014년 유럽 시장에서 400만대를 판매할 것으로 보이는 위코의 2017년 목표 판매수량은 5,000만대에 달한다. 3년만에 10배가 넘는 성장을 이루겠다는 실로 당찬 목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위코의 뒤를 5,000만대에 달하는 티노 모바일이 받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허무맹랑한 목표로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다.
(2) 파트너 브랜드 뒤에 숨은 기업
노키아와 블랙베리, 이 두 기업은 초기 스마트폰 시장의 주인공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스마트폰 시장이 성장을 본격화하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최근 한 가지 공통점이 늘어났는데, 두 기업 모두 재기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노키아는 2013년 휴대폰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고, 통신장비와 지도 서비스, 특허 등의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노키아 인수 당시 노키아 브랜드를 라이센싱했으나, 2014년 4월 마이크로소프트 브랜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노키아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노키아의 휴대폰 시장 재진입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점부터이다. 그리고 2014년 11월, 노키아의 모바일 시장 재진입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아닌, 태블릿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맺은 휴대폰 사업 매각 계약으로 인해 2016년까지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노키아로서는 태블릿 시장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2016년이지나면 노키아 브랜드의 스마트폰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도 매우 높아 보인다.
블랙베리는 매년 7~8개의 신모델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2012년에는 불과 2개 신모델을 발표하는 데 그쳤다. 2009년 20%에 육박하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2011년에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2012년에는 다시 절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휴대폰 사업 매각 시도 조차 실패했다. 이처럼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는 블랙베리가 2013년부터는 모델 수를 조금씩 늘리고 있다. 2014년 발표한 모델 수는 4개, 전성기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2012년에 비하면 두 배가 늘어난 셈이다. 게다가 2014년 발표한 모델들은 블랙베리의 색깔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포르쉐와 공동으로 디자인하거나, 정사각형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거나, 블랙베리의 예전 히트 모델 디자인을 부활시키는 등 나름의 노력이 눈에 띈다.
이처럼 재기를 노리는 두 기업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폭스콘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재기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폭스콘은 외주 생산 전문기업(EMS)으로, 노키아와 블랙베리가 폭스콘과 협력하여 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두 회사와 폭스콘의 파트너십은 외주 생산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노키아가 출시한 태블릿 ‘N1’의 경우, 폭스콘이 생산뿐만 아니라 개발, 유통, 판매까지 담당한다. 따라서 실제 노키아의 역할은 디자인 참여와 브랜드 및 특허를 라이센싱해주는 것에 그친다. 블랙베리의 스마트폰 ‘Z3’의 경우에도 폭스콘이 제품을 개발, 생산, 유통하는 방식이다.
폭스콘의 목표는 외주 서비스 영역을 넓히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폭스콘은 2013년말 ‘인포커스(InFocus)’라는 브랜드명으로 자체 스마트폰을 대만 시장에 출시했는데, 샤오미의 저가 모델인 홍미(HomgMi)의 대항마로 포지셔닝하면서 출시 3분기 만에 대만 스마트폰 시장의 6%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레노보의 전자상거래 인력을 영입하는 등 중국 온라인 시장 진출까지 추진할 정도이다.
외견상 폭스콘이 미국 프로젝터 브랜드인 인포커스를 라이센싱하는 형태이지만, 사실상 폭스콘의 자체 브랜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지금까지 폭스콘은 고객사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자체 스마트폰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지만, 인포커스를 시작으로 스마트폰 사업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폭스콘의 부품 계열사와의 협력을 통해 샤오미에 대적할 수 있는 가성비7 높은 스마트폰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요약하면, 폭스콘은 노키아, 블랙베리, 인포커스 등 파트너 브랜드 뒤에 숨어서 본격적인 경쟁을 위한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3) 기업 분할로 숨은 기업
2014년 3분기 중국 LTE 스마트폰 시장 순위에 낯선 기업들이 등장했다. 기존 LTE 강자들 다음 순위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단번에 1위와 2위 자리를 꿰찼다. 덕분에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ZTE와 애플을 제치고 나란히 두 계단씩 올라서 6위와 7위에 올랐다. 일반 유통(Open 시장)에 주력하던 비보(Vivo)와 오포(Oppo)가 이동통신 사업자의 중저가 LTE 시장에 진입하면서 거둔 성과이다. 샤오미처럼 화려하게 급성장하는 기업들은 아니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업체로 주목을 받는 기업들이다.
두 기업의 성장 추이를 보면 쌍둥이처럼 닮았다. 판매 대수도 항상 비보가 오포를 수십만 대 차이로 근소하게 앞선다. 이번에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란히 이동 통신 사업자 시장에서 비슷한 성과를 냈다. 마치 팀플레이를 펼치는 마라톤 주자들을 보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회사는 실제로 하나의 회사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같은 회사라는 점을 극구 부인하지만, 산업 전문가들, 심지어 중국의 일반 소비자들도 동일한 회사라는 것은 알고 있을 정도이다. 비보와 오포 그리고 오포가 설립한 원플러스(One Plus)의 창립 과정을 살펴보면 세 회사가 동일한 소유주 아래 느슨하게 연결된 회사들임을 알 수 있다.
두 회사의 모회사는 오디오 및 비디오 기기를 전문으로 생산, 판매하던 부부까오(步步高, BBK)이다. 애플이 아이팟 사업을 하다가 아이폰을 출시했던 것처럼, AV전문업체였던 부부까오는 2002년부터 휴대폰 시장에 진입했고, 2011년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비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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