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미국경제는 고물가·고금리 영향 누적으로 하반기로 갈수록 소비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점차 둔화되겠으며, 최근 노동시장 부진 등에 따른 하방압력을 감안할 때 성장속도는 예상보다 다소 약화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그러나 AI 관련 투자 확대, 이민자 유입 지속 등에 힘입어 당분간 급격한 경기침체 없이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23일 '최근 미국 경기흐름에 대한 평가'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8월 들어 미국경제에 드리운 ‘R(recession)의 공포’가 금융시장을 흔들어 놓았다. 7월FOMC 회의 이후 9월 금리인하 기대가 확대된 상황에서 제조업·노동시장 관련 경기지표가 부진한 것으로 연이어 발표됨에 따라 미국경기 급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여기에 미 연준이 경제상황을 오판하여 적절한 통화정책 전환(pivot)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도 제기되면서 주가‧금리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미국의 경기향방은 자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화정책과 성장경로, 연말로 다가온 미 대선, 더 나아가 우리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상반기중 미국경제는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 성장세가 둔화(3.8%→2.3%, 전기대비 연율)됐으나 내수를 중심으로 양호한 성장흐름을 지속함에 따라 경기연착륙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 노동시장이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됐고, 미 연준도 앞으로는 양대목표dual mandate 모두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7월 FOMC 회의 고용상황이 금리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부각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7월 고용지표 충격(실업률 4.3%, 비농업취업자수 +11만명)으로 미국경제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촉발됐다. 심지어 실업률을 기반으로 미국경기의 침체국면 진입 여부를 파악하는 데 활용되는 샴 규칙(Sahm rule)이 7월 들어 발동됐다는 점을 근거로 미국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러한 주장은 샴 규칙이 과거 경기침체 여부를 비교적 정확하고 신속하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반면 노동수요가 둔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대체로 양호한 수준이며, 최근 실업률 상승은 노동공급 증가에도 기인하고 있어 급격한 경기위축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양측 견해를 바탕으로 미국의 경기흐름을 판단하면, 노동시장은 그간의 높은 긴장도가 완화되면서 수급이 균형을 찾아가는 정상화 과정에 있으며, 이에 따라 경기가 단기간내 급락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했다.
과거 경기침체기에는 노동공급이 충분한 상황에서 대량해고 등 급격한 노동수요 위축이 실업률 급등을 촉발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동수요가 약화되고는 있으나, 아직 해고율이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는 등 노동수요가 크게 위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또 과거 침체진입 직전에는 성장률이 큰 폭으로 둔화됐으나 최근 미국경제는 양호한 성장모멘텀을 유지하는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성장세가 점진적으로 둔화되는 연착륙 과정에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7월 고용보고서 결과에 따른 샴 규칙 발동만으로 경기침체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노동수요측 요인과 더불어 노동공급과 일시적 요인(허리케인 Beryl)도 상당부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샴 규칙을 개발한 당사자도 샴 규칙 발동만으로 경기침체를 예측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팬데믹 이후 달라진 노동시장 여건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점도 고용둔화에 따른 성장의 하방압력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따라서 보고서는 미국경제는 급격한 경제침체 없이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노동시장 둔화 신호는 이미 나타나고 있는 데다 주요 고용지표가 팬데믹 이전 혹은 균형수준에 근접하고 있어 앞으로 고용상황에 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경제는 노동시장 유연성이 매우 높아 해고율 상승 등 노동수요 위축이 본격화될 경우 실업률이 급등하면서 즉각적인 경기위축을 야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보고서는 금융시장 측면에서도 최근 미국 경기관련 지표의 등락에 따라 가격변수 민감도가 증대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7월 고용보고서 발표 이후 나타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는 그간 나홀로 독주(US exceptionalism)를 해 온 미국경제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도 들었다.
이후 일부 개선된 고용지표 등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다소 완화됐으나 미국 경기둔화 속도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향후 예상보다 부진한 경기지표로 또 다시 금융시장 불안이 크게 확대되고 가계·기업 심리가 위축될 경우 미국경제의 성장 하방압력이 증대될 수 있으며, 우리나라 금융시장 및 對미 수출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파이낸셜신문=임권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