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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3김' 역사 속으로

조경화 기자 | 기사입력 2018/06/24 [04:18]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3김' 역사 속으로

조경화 기자 | 입력 : 2018/06/24 [04:18]

[파이낸셜신문=조경화 기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순천향병원에서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장레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국립묘지 대신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가 묻혀 있는 고향의 가족묘원에 묻힐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평소 진료를 받았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   3김이 현대 정치사에 남긴 족적은 크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사진=연합)

 

이로써 현대 한국 정치사를 주도했던 3김 정치의 주인공인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모두 역사속으로 퇴장했다.

 

고 김종필 전총리는 지난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 쿠데타에 가담, 현대정치사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어 지난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특히 김 전총리는 5·16 혁명 후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줄곧 영원한 '2인자의 길'을 걸어왔다.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19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시작으로 당시 정권과 끊임없는 갈등과 협력으로 시대를 풍미했다.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올랐다. 

 

이후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한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해다가 낙선했다.

 

그러나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 오뚝이처럼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1992년 대선을 앞두고 3당 합당으로 한배를 탄 YS에 대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여권 2인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또, 1997년 대선에선 여야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워 당시 김대중 후보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DJP 연합'을 성사시키며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일궜다. 

 

이미 고희를 훌쩍 넘긴 그는 '국민의 정부 초대 국무총리'라는 공식적인 2인자의 반열에 올라 외환위기 사태 극복 등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공조를 과시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내각제 파동과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공동정권 수장 사이의 앙금은 결국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및 공조 파기로 이어졌다.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시도했으나, 자신의 10선 도전 실패와 함께 고작 4명의 의원만 배출하는 참패를 당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 김 전총리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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