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LG' 세운 故 구본무 회장…"재벌 갑질과 거리 먼 소탈한 기업인"

황병우 기자 | 기사입력 2018/05/21 [11:11]

'글로벌 LG' 세운 故 구본무 회장…"재벌 갑질과 거리 먼 소탈한 기업인"

황병우 기자 | 입력 : 2018/05/21 [11:11]

외환위기로 반도체 내줬지만 디스플레이·2차전지 세계 1위 성장 주도…하나뿐인 친아들을 잃은 아픔도

 

▲ 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LG그룹)

 

[파이낸셜신문=황병우 기자] LG그룹을 지난 23년간 이끌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구본무 회장이 지난 20일 향년 73세로 별세했다.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전 회장과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에 이어 LG그룹의 '3세 경영'을 23년간 도맡은 고 구본무 회장은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생활건강 등 여러 글로벌 기업을 성장시킨 기업으로 평가된다.

 

지난 2005년 57년간 3대에 걸친 허氏가와의 동업도 일체의 잡음이나 분란 없이 ‘아름다운 이별’로 마무리한 것도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국내 경영학계에서는 두 가문의 60년 가까운 성공적 동업관계에 대해 한국기업사에서는 보기 드문 성공한 동업스토리로 남게 될 것이라며, "국제 경영학계의 연구 대상"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끈기와 결단의 리더', '야구를 사랑한 기업인', '양자를 후계자로 키운 총수'라는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구본무 회장을 가까이서 접한 재계와 LG그룹 관계자들은 그를 '소탈한 기업인'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LG그룹 전 임원은 "평범한 옷차림으로 인해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이 못 알아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 1999년 8월 구 회장(오른쪽)과 구자경 명예회장(왼쪽)이 담소하고 있는 모습 (사진=LG그룹) 

 

>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현장 경험 쌓으며 리더로 성장

 

구 회장은 1945년 경남 진주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재학 중 군대를 마친 후 미국으로 유학해 애쉬랜드대학교와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에서 각각 경영학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교를 마친 후 1975년 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하여 첫 근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과장, 부장, 이사, 상무, 부사장 등의 직위를 차례로 거쳤다.

 

럭키와 금성사(현 LG전자)의 기획조정실 등 그룹 내 주요 회사의 영업, 심사, 수출, 기획업무 등을 두루 경험하며 다양한 실무경력을 쌓았다.

 

 특히 1985년 이후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전무와 부사장의 직책을 맡아 그룹경영 전반의 흐름을 익히는 기회를 가졌고, 19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룹 차원의 경영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돼 국내외 주요 인사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며 경제 및 경영 전반에 대해 논의하거나 의견을 청취하는 등 대외 활동의 보폭을 넓혔다.

 

▲ 1995년 10월 구 회장(왼쪽 두 번째)과 허창수 당시 LG전선 회장(세 번째)이 LG전자 평택공장을 찾아 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LG그룹)

 

> 1995년 LG그룹 회장 취임해 '전자-화학-통신' 3개 핵심 사업군 구축

 

구 회장은 첫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1995년 LG그룹의 회장에 취임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추진해온 경영혁신의 마지막 단계로, 젊고 도전적인 경영진으로의 세대교체를 통해 미래 사업을 주도적으로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결심에 따라 이뤄진 국내 대기업의 첫 무고(無故) 승계였다.

 

구 회장의 회장 취임은 부친 보다 5년 정도 늦은 것이었지만, 부친이 건강함에도 승계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취임 이후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구 회장의 의지대로 그룹의 성장을 주도해나갈 사업으로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 육성해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특히 구 회장은 가전, 기초소재 등 전자와 화학 분야의 주력사업을 세계 최고로 키운다는 목표로 선제적인 투자와 역량을 집중해 가전 사업은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고, 화학 사업도 2차전지 등 고부가 제품 개발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외에도 통신서비스,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거듭했다.

 

▲ 2014년 3월 연구개발성과보고회에서 구 회장이 연구과제인 LG전자 올레드 TV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LG그룹)

 

정도 경영,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도전주의와 시장선도 등을 경영 이념으로 삼았던 고인은 그룹 기술자문위원회와 해외사업추진위원회 등의 위원장 자격으로 LG그룹의 '기술개발력 제고'와 '세계화 추진' 등 제2의 경영혁신을 주도적으로 준비하기도 했다.

 

평소 '글로벌 경영에서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신규 사업은 시작하면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매사에 '최고'를 추구하는 점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과 비슷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GS, LS, LIG, LF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시키는 등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그룹 관계자는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면서 용기 있고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끝까지 도전해 결실을 보는 구 회장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이 힘을 발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LG디스플레이의 대형 올레드(OLED) 사업, LG화학의 이차전지 사업을 글로벌 1위로 이끌고, 최소 3년 걸릴 것이라던 LTE 투자를 9개월 만에 끝내고 이동통신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은 것도 이런 고인의 끈기와 결단이 근저에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변경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기업문화를 과감하게 바꿔 놓은 것도 고인의 역할이 컸다.

 

▲ 2016년 2월 LG테크노콘퍼런스에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대화하는 구 회장 (사진=LG그룹)

 

> 순환출자 고리 끊고 국내 대기업 최초 지주사 전환

 

1997년 IMF외환 위기 이후 반도체 빅딜로 인해 반도체 사업을 통째로 현대반도체(현 SK하이닉스)에 넘겨주는 통한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재무구조 개선과 대규모 외자 유치, 적극적인 기업공개(IPO)로 기업의 체질을 크게 개선했다.

 

구 회장은 반도체를 내주는 대신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보유하던 LCD사업을 각각 분리해 필립스와의 합작법인으로 디스플레이 전문기업을 설립했다. 2008년에는 LG디스플레이로 독립해 현재 대형LCD시장에서 9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LG생활건강,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등 7개 우량계열사가 상장되며 주력기업 대부분이 직접 금융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고, 경영전반에 걸쳐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고, 경영투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외환위기 후 경영시스템 강화를 위한 구 회장의 노력은 2003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함으로써 대미를 이루었다. 

 

외자유치와 기업공개를 통한 재무구조개선에 이어 단계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기초체력을 다진 LG는 1999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작업에 들어갔다. 

 

지주회사체제 전환 작업으로 LG는 지배구조를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함으로써,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선진적 지배구조 시스템을 구축했다.

 

▲ 2015년 12월 마곡 LG사이언스파크 건설 현장에서 구 회장(가운데)과 하현회 (주)LG 부회장(오른쪽)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LG그룹) 

 

> 미래 위해 'LG사이언스파크' 건립한 야구 매니아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하며 LG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첨단 연구개발(R&D)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LG트윈스 구단주로 활동하면서 자율경영을 구단 운영에 접목해 '깨끗한 야구, 이기는 야구'를 표방, 창단 첫해인 1990년 시리즈에서 예상을 뒤엎고 우승하는 신화를 이뤄냈다.

 

이후 동생 구본준 부회장에게 구단주 자리를 물려줬지만 1년에 몇 차례는 직접 경기장을 찾았고, LG트윈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팬들 사이에서는 '구느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주말에 동료들과 낚시와 골프를 즐기지만 '탐조(探鳥)'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고인은 집무실에 망원경을 두고 트윈타워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의 밤섬에 몰려드는 철새를 즐겨 감상했다고 한다.

 

소탈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예의를 잘 지켜 고인을 대해본 사람들은 인간미와 친근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시간관념이 철저해 정해진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고 지인들은 입을 모은다.

 

슬하에 아들과 딸 둘을 뒀으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B2B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2004년 양자로 입적해 경영 수업을 받도록 했다.

 

아래에는 고인의 주요 연보를 정리했다.

 

◇ 출생·학업

    ▲ 1945. 2. 10. = 경남 진주시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 출생

    ▲ 1972 = 미국 애슐랜드(Ashland) 대학교 경영학 학사

    ▲ 1974 =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 입사·경영수업

    ▲ 1975 = LG화학 심사과장

    ▲ 1977 = LG화학 수출관리부장

    ▲ 1979 = LG화학 유지총괄본부장

    ▲ 1980 = LG전자 기획심사본부장

    ▲ 1981 = LG전자 이사

    ▲ 1983 = LG전자 일본 도쿄(東京) 주재 이사

    ▲ 1984 = LG전자 일본 도쿄(東京) 주재 상무

    ▲ 1985 = LG회장실 전무

    ▲ 1986 = LG회장실 부사장

    ▲ 1989 = LG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 1990년 럭키금성 프로야구단 구단주 

 

◇ 그룹 경영

    ▲ 1995 = LG 제3대 회장 취임

    ▲ 1995 = LG프로야구구단 구단주

    ▲ 1996 =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출범

    ▲ 1997 = LG상록재단 설립, 이사장 취임

    ▲ 1999 =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출범 

    ▲ 2000 = LG아트센터 개관 

    ▲ 2003 = LG 국내 대기업 최초 지주회사체제로 전환, 지주회사 ㈜LG 출범 및 LG, LS와 계열 분리

    ▲ 2005 = LG, GS와 계열 분리, 새로운 경영이념 'LG 웨이(Way)' 선포 

    ▲ 2006 = LG디스플레이, 파주 디스플레이 단지 준공

    ▲ 2009 = LG전자 '서초 R&D 캠퍼스' 준공 

    ▲ 2010 = 유무선 통합 통신사 LG유플러스 출범

    ▲ 2015 = LG복지재단 대표이사 취임, 'LG 의인상' 제정

    ▲ 2016 =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 취임, 연암학원 이사장 취임,

    ▲ 2018 = 국내 최대 규모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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