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분열의 책임을 물어라
국방부 분열의 책임을 물어라
  • 전대열 칼럼
  • 승인 2009.09.0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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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국방예산 삭감문제를 놓고 국방부장관과 차관이 날카로운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방부의 예산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천문학적으로 많다는 것이 정설이다. 남북이 대결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전체 정부예산의 상당부분이 이에 할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하여 외국의 무기상인들과 결탁하여 엄청난 리베이트를 챙기는 국방부 고위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된 일도 있다.

과거 정권 때부터 국방예산 중에서 암호로 불려지는 특별무기구입 사업이 들어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정권의 실세들이 이에 개입하여 특정 업자에게 무기구입을 맡김으로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검은 유착관계는 정권의 싹을 노랗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 일어난 장관과 차관의 대립도 이 문제가 직접적으로 거론되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어 새삼스럽게 그 더러운 측면이 되새겨지기도 한다.

이 사건의 전말을 살피면 내년도 예산안을 취합해보는 관계자들의 모임에서 국방 예산안이 7.9%증액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이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첫째 장병 복지문제 등 병영생활관 개선부문은 삭감하지 말 것. 둘째 무기 획득소요를 객관적으로 산출해 과도하게 늘어난 방위력 개선비 부문을 재검토할 것 등이었다. 이에 곁들여 “무기 구입과정에서 오고가는 리베이트만 줄여도 방위력 개선비를 20% 정도 줄일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이 지침을 받은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이 국방예산 삭감안 검토에 들어갔으며 국방부 장수만 차관을 불러 “국방예산 조정안을 만들어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장차관은 작년도 예산에서 3.8% 정도만 증액하는 조정안을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장차관은 이상희 장관과 군의 반발을 우려하여 사전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사건의 개요다.

명색이 차관의 직책에 있는 사람이 장관의 사전 양해도 구하지 않고 예산 삭감안을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모를 리 없을 터인데 이처럼 중대한 문제를 단독으로 시행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점이다. 이것은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의 입김만 믿고 그들이 시킨 대로 꼭두각시 역할만 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더구나 일개 부처의 예산안을 나중에 장관이나 군 관계자들이 반발할 것이 뻔한데 사전에 전후문제를 솔직히 털어 놓고 합의하에 삭감안을 작성했어야 옳았다는 것이 우리들의 견해다. 아무튼 주사위는 벌써 떠났다. 차관의 이러한 행동을 나중에야 알게 된 이상희 장관이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장관 앞으로 긴 서한을 발송하여 “국방예산 삭감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이 서한을 통하여 장수만 차관의 행동을 하극상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서 관계자들의 반응은 엇갈리는 편이다.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에 따른 차관의 입장을 두둔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위계질서가 있는데 차관이 장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청와대에 삭감안을 들고 간 것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고 지탄하는 이들도 있다. 대체적으로 관료사회의 특성상 장관과 차관의 직역(職域)은 큰 차이가 있는데 이를 무시한 차관의 행동이 경솔했다는 것은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다.

이 문제가 매스컴에 오르내리자 내각을 책임지고 있는 한승수 총리가 국방부 장관과 차관을 따로 불러 크게 질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평소에 묵묵히 업무를 소화시키는 스타일의 한총리가 노발대발한 것은 자칫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 걱정해서라고 생각된다. 삭감을 지시한 중심에 이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탓할 일은 아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상의하여 삭감이 가능하면 삭감하면 된다.

만일 국방예산 삭감으로 안보에 차질이 생긴다고 하면 그런 사정을 설명하고 삭감의 부당성을 보고하면 그 뿐이다. 모든 일은 정당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되 시스템을 통한 소통으로 끝을 맺어야 탈이 안 생긴다. 차관이란 직책은 어디까지나 장관의 명령과 지시에 따르는 것이 정칙이다. 전관(專關)사항을 위임받은 것이 있을 때에만 단독 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다. 조직의 위상을 무너뜨리면 하극상의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금주 중으로 개각이 있을 모양이다. 청와대 비서진은 중폭으로 이미 개편이 끝났다. 서한파동으로 장관과 차관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할 것인지 임명권자의 뜻에 달렸지만 이번 파동의 원인은 차관이 제공한 것으로 풀어보는 것이 마땅하다. 분열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국방부에서 이런 사단(事端)이 벌어진 것은 전적으로 상하를 구별하지 않은 오만에서 나온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관의 책임을 먼저 묻는 게 상식이다. 장관의 책임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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